어느 여검사의 조기교육론(2014. 08. 19)

 딸 아이의 유치원에서 만나는 학부모나 선생님들까지도 ‘여검사’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상당히 궁금해들 하십니다. “과연 어떤 조기교육을 시키는지.” 현재 제가 담당하고 있는 전담 업무 중에는 소년 업무가 포함돼 있는데, 소년범의 경우 그 인격이 형성 과정에 있는 특성을 고려해 단순한 형사처벌보다는 그 품행을 교정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조치가 효과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소년과 그 보호자를 함께 면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참 기억에 남는 보호자가 있었습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게 14세의 소년은 꿈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소년의 아버지에게 소년을 어떻게 키우실 거냐고 물었더니 아버지는 검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나 부끄러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겠습니다”. 검찰 업무를 하다보면, 한 사람을 ‘훌륭한 시민’으로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느끼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검사로서의 책임감보다도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소년의 아버지로부터 저도 제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 비춰 보면, 공부는 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확실한 동기부여만 있으면 독한 마음으로 몇 년 안에 잘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훌륭한 시민’은 독한 마음으로 몇 년 안에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변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법을 깨달아야 하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나와 다른 타인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배려의 마음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조기교육이 필요한 ‘long term project’라고 보입니다. 업무로 춘천청소년자립생활관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비뚤어졌던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그 아이들로부터 다시 힘을 얻으신다는 그 곳 관장님께 저는 아이들과 함께 정기적인 독서토론을 해보고 싶다고 제의를 드렸는데, 관장님의 대답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첫 번째는 ‘잘 먹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푸짐한 집 밥을 매끼 먹다보면 어느새 식사 봉사하시는 분들과 친해지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그 다음은 ‘잘 노는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 제가 생활관 아이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대부분이 1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요” “워터파크에 가고 싶어요” 등 소박한 소망들이었습니다. 관장님 말씀에 의하면, 함께 여러 곳에 놀러 다니다 보면 그 곳에 가봤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 사회의 질서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서 배우는 자신감과 자기사랑은 잘 먹고 잘 노는 것이 충족된 다음에서야 가능하다고 하니, 독서토론은 저만의 착각이었던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내 아이를 ‘휼륭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습니다. ‘대화하면서 집에서 함께 밥차려먹기’, ‘아이와 즐겁게 놀기’가 그 시작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도 일하는 엄마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춘천은 조금만 달려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호수며 산이며 계곡에 갈 수 있는 사계절 행복놀이터가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우리 모녀도 매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주말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춘천의 구석구석을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훌륭한 시민’에 가까워질 것 같습니다.

(강원도민일보 오피니언  정유선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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