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청소년 87만 전과자 안 되게 정신적 멘토 만들어줘야(2012. 10. 29)

이중명(70) 에머슨퍼시픽그룹 회장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국소년보호협회 사무실에 들른다. 지난 2월 이 회장이 재단법인 한국소년보호협회 회장을 맡은 이후 반복되는 일이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17일 대전광역시에 있는 대산학교에서 5박6일간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했다. 대산학교는 이른바 소년원으로 불리는 학교다.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사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들을 먹여 주고 재워 주며 공부를 시키고 기술을 가르친다. 한국소년보호협회장이 직접 소년원에 들어가 체험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 회장을 인터뷰하기로 생각한 것은 학교 폭력 문제 때문이었다. 학교 폭력이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된 적은 없다. 신문에 학교 폭력 관련 기사가 실리지 않는 날이 없는 게 요즘이다. 여론은 가해학생에 대한 가차 없는 처벌과 격리를 주장한다. 문제는 그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소년보호협회장은 비행청소년의 집합소인 소년원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지난 5월 22일 이 회장을 만났다.

 

 


   
   - 한국소년보호협회장을 왜 맡겠다고 했나. “한국소년보호협회가 생긴 지 10년 되었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또 3년간은 회장 자리가 공석으로 있었다.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에 좋은 일에 헌신하고 싶었다.”
   
   - 회사 경영과 함께 하는 게 힘들 텐데. “회사 경영은 두 아들이 잘하고 있다. 나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나이가 먹고 보니 확실히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 어떻게 소년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나. “소년원은 19세 미만의 아이들이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을 머무는 곳이다. 나와 최소 50살 이상의 차이가 난다. 그 아이들의 문제를 알려면 직접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회장은 대산학교 측에 학생들과 똑같이 입고 먹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지난 3월 17일부터 일주일간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생 3명, 중학교를 중퇴한 학생 1명과 함께 한 방에서 지냈다.
   
   - 학생들이 쉽게 마음을 열던가. “학교에서는 저녁식사를 하고 9시부터 취침시간이다. 말할 시간은 취침시간밖에 없다. 첫째 날은 학생들이 말문을 열지 않았다. 둘째 날부터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 어떻게 말문을 열게 했나. “나도 중학교 3학년부터 담배를 폈다는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놀라면서 ‘회장님도 중학교 때 담배를 폈냐’며 깔깔거리며 웃더라. 그때부터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학생들 대부분이 초등학생 때 이미 성경험을 한다는 것이었다.
   
   - 소년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주로 무슨 죄로 들어오나. “대부분이 절도죄다. 물론 한 번 절도해서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을 여러 번 훔친 죄다. 사실 아이들이 저지른 죄는 별개 아닌 거다. 물론 소년원은 전과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 소년원 학생들의 공통점은 뭔가. “부모에게 원죄(原罪)가 있었다. 대부분이 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아이들은 중요한 시기에 방치되어 있었다. 가장 예민한 시기에 인생에 대해, 꿈에 대해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이 자랐다.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며 성장했다.”
   
   - 대화를 나눠 보니 아이들의 희망이 뭐였나. “첫 번째 희망도 여자였고, 두 번째 희망도 여자였고, 세 번째 희망도 여자였다.”
   
   - 그래서 뭐라고 설명해줬나. “여자가 인생을 사는 데 중요하지만 학생 시절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분야로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아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여자가 나타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줬다.”
   
   - 소년원을 나오면 어떻게 되나. “많은 경우 갈 데가 없다. 그러다 나이 스무 살을 넘기고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그때는 여지없이 교도소로 간다. 교도소에서 나오면 전과자가 된다.”
   
   - 한국소년보호협회장으로서 무엇을 하려고 하나. “나는 ‘위기의 청소년’을 87만명 정도로 본다. 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일진에 가입하는 등 폭력과 왕따를 일삼는 아이,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아이, 소년원에 들어가 있는 아이, 소년원을 거치고도 마음을 못 잡는 아이 등을 통틀어 ‘위기의 청소년’으로 부른다. 나는 이들 87만명의 청소년에게 개별적인 멘토를 붙여 엮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 87만명에게 멘토를 만들어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렇다. 다는 못하더라도 50만명의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멘토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범죄 없는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왜 학생들에게 멘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이 아이들이 학교 폭력의 배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일진회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는다. 나도 10대 때 친구들과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쳐 본 일이 있다.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그런 것이다. 나의 이런 장난이 절도행위로 발전하지 않은 것은 내게 정신적 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자력(磁力)이 나를 나쁜 쪽으로 빠지지 않게 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부모 말 안 듣고 선생님 말도 안 듣는다. 자기보다 조금 나이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그래서 대학생 멘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에게 언제든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학생 형(혹은 언니)을 만들어주고 싶다.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때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나. “기숙형 대안학교인 스튜디오 스쿨(studio school)을 세워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낮에는 직업훈련을 하고 밤에는 정신교육으로 건강한 가치관을 심어주고 싶다.”
   
   그는 폐교 위기에 몰린 경남 남해군 남해해성고를 2006년에 인수해 지역 명문고로 탈바꿈시킨 신화가 있다. 주간조선은 2009년 6월 9일자(2059호)에 남해해성고 성공 스토리를 자세히 보도했다. 그는 멘토링 제도와 파격적인 장학금으로 학생들의 내면을 변화시켰다. 남해해성고 학생들은 멘토 교사를 갖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대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줬고, 결국 이것이 학생들을 움직였다.
   
   - 직업훈련과 정신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에머슨퍼시픽은 학생들에게 골프 도우미 교육을 시켜 취업을 도울 것이다. 한국미용협회, 네일아트협회 등에서 재능기부로 직업훈련을 맡아주기로 했다. 또 본죽, 아딸떡볶이 등 프랜차이즈 회사에서도 조리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연세대 건축과 출신인 그는 197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세 번 사업에 실패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실패의 경험을 자산으로 1995년 골프리조트사업에 뛰어들어 골프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며 현재의 에머슨퍼시픽그룹을 일궜다. 사업이 성공 궤도에 접어든 이후 그는 수년 동안 지역범죄예방위원으로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 세족식을 벌여왔다. 그는 지난 5월 12일 연세대에서 사회봉사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노년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데 왜 고생스러운 일을 자처할까.
   
   “돈은 어느 정도 벌면 더 벌려고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 있는 좋은 일에 힘을 쏟아야지요. 마침 오늘이 내 생일이오. 환갑잔치를 한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고희잖아요. 인생, 눈 깜짝할 사이예요"

 

기사원문보기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08100008&ctcd=c04